카발란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하면서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화에 등장한 이후 전년 대비 무려 400% 이상 매출이 상승했다고 하죠. 단순히 영화에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이 정도 인기를 끌다니, 어쩐지 조금 신기한 수치이죠?
박찬욱 감독은 영화 속 등장하는 소품의 디테일에 큰 의미를 두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영화 줄거리 전체를 관통하는 특정 사건이 카발란의 특징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것이 화제가 되어 인기몰이를 했다고 합니다. 카발란과 헤어질 결심과의 관계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볼까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헤어질 결심 속 카발란의 메타포(metaphor)
영화에서 카발란 위스키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영화 속 소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도수 사건을 수사하고자 장해준이 송서래의 집에 갈 때마다 항상 카발란 위스키가 등장합니다. 반면 기도수 사건 종결 후 영화 후반부에서는 이 카발란 위스키가 보이지 않죠.
즉, 카발란 위스키는 기도수 사건의 핵심을 함축하고 있는 중요한 메타포(metaphor)인데요, 함께 알아볼까요?
1. 대중적이지 않은 술
기도수는 극중에서 굉장한 소유욕과 과시욕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자신의 취양이 대중적이지 않고 고풍스럽다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가의 제품이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을 수 있는 제품들을 사용하고 있는 기도수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한 소유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것에 자신의 이니셜을 세겨넣었다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내의 몸에도 이니셜을 넣어두었습니다. 아내는 보이지 않는 곳만 학대를 하면서 말이죠.
여기에서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은, 기도수의 과시욕과 소유욕의 교집합에 있는 것이 위스키가 담긴 힙플라스크라는 점입니다. 등산을 가서 산 정상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것이 자신을 과시하는 것이었고, 그 위스키를 담아가는 것이 힙플라스크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사용하고 있는 위스키는 카발란 제품인 것은 후에 유추할 수 있기에, 카발란이 여기에 해당하는 특징을 알아보자면 아마도 카발란은 세계적으로 높은 품질을 인정받고는 있지만, 대중적인 술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술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위스키 마니아가 아니라면 카발란이라는 위스키가 좋은 위스키인지는 차치하고, 대만에서 위스키를 만드는지조차 모르시는 분들도 꽤 많겠죠.
이런 점들을 미루어 볼 때, 카발란은 주변에 과시하고자 일부러 특색 있는 취미를 갖는 기도수의 성격을 어느 정도는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2. 고정관념을 깨고 성공한 카발란
극중에서 장해준은 송서래가 기도수의 사망 추정시각에 일을 하고 있었다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수는 단순 실족사로 처리하고 마는데요.
사실 근무시간이라는 것이 알리바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송서래를 의심할 수 있고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카발란이 고정관념을 깨고 만들어진 술이라는 것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열대 기후는 위스키 숙성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오히려 자신들만의 무기로 만들어 내놓은 게 카발란이기 때문입니다.
즉, 장해준이 송서래는 절대 범인이 아닐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깼어야만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3. 향기로운 술
마지막으로는 왜 하필 카발란 솔리스트 올로로소 셰리였는가에 집중해 보시길 바랍니다. 올로로소(Oloroso)는 스페인어로 향기롭다는 뜻입니다. 이는 송서래라는 향기에 가려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장해준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을 이해하려면 이 제품이 영화 속에 나오는 때를 유심히 살펴보면 되는데요. 카발란이 영화 속에 제일 처음 등장한 장면은, 장해준이 사건 현장에서 기도수의 힙플라스크 안의 제품을 확인할 때죠. 이때는 위스키라는 것만 알았지, 어떤 종류의 위스키라는 것은 모릅니다.
장해준이 이 위스키가 카발란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을 때인데요. LP 진열장에서 사건 현장에서 본 것과 같은 위스키를 발견하면서부터였죠. 이 장면에서 장해준은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그녀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고 오히려 피해자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형사들의 회식 자리에서도 카발란이 등장하는데요. 장해준은 송서래를 생각하면서 카발란 올로로소 셰리를 마시는데, 옆에 있는 그의 동료가 범인은 송서래라며 의견을 피력해도 그는 오로지 그녀만을 떠올리며 주위 말을 듣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송서래를 찾아가 기도수 사건은 실족사로 종결됐다고 말할 때도 LP 진열장 안에 카발란이 그대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사건이 종결되면서 더 이상 용의자와 형사의 관계로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장해준은 그녀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딱 ‘향기에 취하다’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네요.
카발란이 영화 속 메타포라는 사실에 더욱 쐐기를 박는 장면은, 진실을 알고 그녀를 추궁하고자 다시 집을 찾아갔을 때인데요. 이때는 LP 진열장에 있던 카발란이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이는 장해준이 송서래라는 향기에 가려져 있던 진실을 목도했음을 의미합니다.
정리
카발란은 박찬욱 감독이 실제로 좋아하는 술이라고 합니다. 영화 개봉 이후, 카발란에서 헌정용 위스키를 만들어 박찬욱 감독에게 선물했다고도 하죠. <헤어진 결심>이 흥행한 것도 그렇지만, 알고 보면 매우 흥미로운 영화 속 메타포가 결국 카발란의 매출 상승을 견인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