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 속 위스키

줄거리

영화 <소공녀>는 어려운 형편 속에 사는 주인공 ‘미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녀는 난방도 되지 않아 남자친구와 사랑도 나눌 수 없을 만큼 열악한 집에서 생활하면서 생활비는 프리랜서 가사도우미로 버는 넉넉치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공녀 속 가사도우미
미소의 하루 가계부
미소의 하루 가계부

하지만, 그녀는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만 있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데요.

소공녀의 담배와 위스키

그런 그녀가 새해를 맞이하자, 집세도 오르고 담배와 위스키 가격마저 오르게 됩니다. 일당은 여전히 그대로인채로 말이죠. 좋아하는 것들이 비싸지는 세상에서 포기한 건 단 하나, 바로 ‘집’.

새해가 되자 바뀐 가계부

집만 없을 뿐 일도 사랑도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미소가 친구들을 찾아가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소공녀 속 위스키의 의미

이 영화의 주인공 미소가 지출내역으로 잡는 것은 크게 6개입니다. 밥, 세금, 약값, 집, 위스키, 담배가 바로 그것이죠. 만약, 여러분들이 돈이 부족하다면, 어떤 것을 먼저 어떤 것을 줄이실 것 같으신가요? 일반적으로 위스키나 담배와 같은 기호식품을 줄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집을 포기합니다. 특히 매일 나가는 지출 중 가장 큰 지출인 12,000원의 위스키만 줄인다면, 집값으로 나가는 10,000원은 지킬 수 있을텐데 말이죠. 그녀에게 위스키는 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12,000원

위스키의 의미는 뒤에 더 설명드리겠지만, 이 영화를 보시다보면 막연히 꿈이나 이상과 같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흔히 말하는 낭만과 같은 개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동시에 그녀가 항상 12,000원짜리 위스키를 마신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영화 중반부에 보면, 그녀에게 바의 사장이 달모어 15년을 권하여 13,000원이라고 이야기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녀의 가계부에는 위스키 가격이 12,000원인 것으로 보아, 천원의 인상도 용납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3000원 위스키

영화 후반부에서 미소가 글렌피딕을 주문하자마자 사장님이 위스키 가격이 2,000원씩 올랐다며 조심스레 이야기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으로 미루어볼 때, 이 바에서 글렌피딕이 어쩌면 제일 싸거나 제일 저렴한 축에 들어가는 위스키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2천원 인상된 위스키

즉, 그녀는 매일 바에 가기는 하지만 항상 제일 저렴한 위스키를 마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다르게 풀이해보면, 그녀에게는 위스키를 즐겨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위스키를 마신 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영화 마지막에 비워진 잔에 14,000원을 두고 나가는 것으로 보아 같은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4000원 위스키

이렇게 금액과 바 사장님의 반응에 집중한다면, 미소는 ‘단 돈 천원도 더 비싼걸 마시기 어려울만큼 형편이 넉넉치 않으면서도 위스키는 마셔야만 하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허세에 찌들어 있는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2,000원이 올랐는데 괜찮겠냐고 물어보는 바 사장님의 반응은 사실 미소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멀쩡한 집도, 직업도 없으면서 술을 마시려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이 정상이냐?’ 라고 생각하셨다면, 이것이 12,000원이라는 금액으로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우리들의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담배, 위스키, 남자친구만 있다면 다른건 아무거나 상관없다는 그녀는 정말 집을 포기해버리니까요. 어찌보면 정말 한심한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담배, 위스키, 남자친구만 있으면 다 괜찮아

그리고, 이 영화 내내 미소의 친구들은 우리와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아직도 위스키 마시니?’라는 공통적인 물음과 함께 말이죠. 심지어 그녀에게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인 남자친구도 그녀와의 삶을 지키기 위해 웹툰작가의 꿈을 포기하고 사우디아라비아로 장기출장을 갑니다.

사진 속 미소

배신자

자신과의 미래를 위해 떠나는 남자친구. 그런 그에게 미소는 배신자라며 분노를 표합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아마도 더이상 그가 꿈을 쫓지 않고 도망가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녀는 아직도 현실적인 문제들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이죠. 남자친구도 당연히 그런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말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꿈을 쫓길 바라는 소공녀 미소

이처럼 그녀가 보다 삶의 근본적인 것을 중시한다는 것은 그녀가 마시는 위스키의 의미가 영상 마지막에 친구가 과거 사진을 회상하며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에서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게 됩니다.

친구의 회상씬
회상속 사진

사진 속에서 밴드의 맴버들은 다 같이 위스키처럼 보이는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담배와 함께 말이죠.

그리고 감독이 의미없이 넣은 소품이 아니라면, 친구가 마시고 있는 구형 글렌피딕 15년이 그 때 마시던 술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미소가 글렌피딕을 달라고 하면서 그것만 마셨단 것, 바 사장님이 달모어 ’15년’을 권했다는 것, 친구가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겨 마시는 술이 글렌피딕 15년이라는 것을 볼 때, 아마도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렌피딕 15년 구형과 신형 비교
글렌피딕 15년 구형(왼쪽)과 신형(오른쪽). 영화 속 보틀은 100 mL짜리라서 라벨의 모양이 조금 다르다.

이 점으로 미루어볼 때, 그들에게 있어서 글렌피딕 15년과 담배는 미소에게 있어서 ‘친구와의 소중한 추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이 추억은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추억의 의미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앞선 설명에서 위스키, 담배, 남자친구만 있으면 된다고 했던 것과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집을 포기했던 미소, 그리고 꿈을 더이상 쫓지 않는 남자친구에게 배신자라고 하는 것들을 보았을 때, 이 추억은 그녀에게 있어서 ‘삶의 원동력’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이것이 없으면, 삶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집보다는 위스키와 담배가 그녀에게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나중에는 그녀가 백발이 되는 것과 핸드폰도 끊겼음을 보여줌으로서 결국 약과 세금에 해당하는 통신요금까지 줄였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죠.

소공녀의 의미

이 제목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소설 소공녀의 줄거리를 대략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영국 부잣집 딸인 세라는 아버지의 사업출장으로 인해 고급 기숙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 사업실패의 소문으로 인해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없었던 세라는 하루아침에 고아에 빈털털이 신세가 됩니다. 이로 인해 학교의 비용을 낼 수 없게되어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하녀가 되면서 모든 천대를 받으며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세라는 특유의 상상력과 이를 활용한 이야기로 친구들을 만들어가며 꿋꿋이 살아가고, 결국에는 아버지와 사업을 같이 했던 친구의 도움으로 다시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세라와의 유사성

영화 속 미소는 동명 소설의 세라처럼 모든 친구들에게 자신을 희생하면서 행복감을 줍니다. 자신의 처지가 남들보다 결코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리고 이는 친구들을 만났을 때에도 변함없던 미소의 특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친구들이 ‘여전하네’라고 얘기한다거나, ‘니 집에서 자주 잤었는데’라는 얘기를 하는 등으로 미루어보면 말이죠.

특히나 밴드에서 역할이 나오지 않았고, 밴드에서 비어있는 포지션이 없던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밴드에서 어떤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매니저와 같이 멤버들과 함께 어울리고 관리하는 역할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소설 속 소공녀인 세라가 상상과 이야기로 친구들을 즐겁게 했듯이, 영화 속 미소는 자신의 포용력과 음식으로 친구들을 편하고 행복하게 해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 속 명문장

이 소설의 명문장으로 꼽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세라가 했던 말인데요.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이 하나만은 바뀌지 않을 거야. 내가 공주라면 누더기나 넝마를 입었어도 속마음은 공주처럼 될 수 있어. 금빛 두른 옷을 입었다면 공주가 되는 게 쉬웠겠지만, 아무도 몰라줄 때에도 쭉 공주가 되는 게 훨씬 대단한 거야. 마리 앙투아네트가 바로 그랬어. 그녀는 감옥에 갇히고 왕비 자리에서 쫓겨나고선 검정 옷만 입고 머리는 하얗게 세어버리고 카페의 과부라 불리며 모욕을 받았어. 그래도 그때가 화려한 옷을 입고 모든 것이 웅장한 곳에 있을 때보다 그녀가 훨씬 더 왕비 같았어. 나는 그때 마리 앙투아네트가 좋아. 그 성난 사람들은 그녀를 겁줄 수 없었어. 그녀는 그들보다 더 강했어. 심지어 그들이 그녀의 목을 쳤을 때도 말이야.”

이 문장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됩니다. 미소가 백발이 되지 않기 위해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고 했던 것도, 나중에는 백발이 되어버린 것도 이 대사를 기반으로 한 설정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현실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에는 ‘결국 백발이 되었구나. 안타깝다.’이지만, 소설 소공녀로 대입해 볼때는, ‘드디어 보다 이상에 가까워졌구나. 행복하겠다.’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설정조차 위스키를 바라봤던 시선처럼 여러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죠.

정리: 부자와 어부 이야기

부자와 어부 이야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조그만 어촌마을을 방문해서 어부와 나눈 이야기인데요. 어부가 물고기를 어느정도 잡고나자 집에 돌아가는 것을 본 부자가 왜 더 물고기를 잡지 않냐고 묻습니다.

이에 어부는 ‘이정도 잡고 집에가서 아내와 아이들을 보러 갈 겁니다.’라고 답변을 합니다.

부자는 ‘배를 더 오래타서 더 많은 물고기를 잡으면 더 많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더 큰 배를 사서 더 많은 물고기를 잡고, 그러다보면 선단을 꾸릴 수 있고, 그러다보면 사업도 더 커져서 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하고 묻습니다.

어부는 묻습니다. “그 다음엔요?”

부자는 대답합니다. “그 다음엔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그 돈으로 백만장자가 되는거죠.”

어부가 묻습니다. “그 다음엔요?”

부자는 대답합니다. “그 다음엔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거죠.”

어부가 묻습니다. “나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영화 <소공녀>는 이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우리가 사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일까? 아니면 물질적인 것들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요즘 사회에서는 대학도 가기 힘들고, 취업도 하기 힘들고, 결혼도 하기 힘들고, 집도 구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다 힘들다고만 하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한 번 쯤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 영화는 해피엔딩인가요? 글렌피딕 15년 한 잔 마시면서 이 질문의 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