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다양한 위스키가 사랑받기까지 위스키는 사람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을까요? 사실 위스키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류가 암흑기를 거쳤는데요. 오늘 말씀드릴 주제가 바로 그 암흑기를 이끌었던 미국 금주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위스키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주류가 되었는지, 그리고 금주법 시대가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 지금부터 함께 알아보시죠!
금주법의 배경
1. 미국인의 음주량
미국 금주법은 1920~1933년까지 약 13년간 시행된 법으로, 미국에서 대표적으로 꼽는 악법 중 하나입니다. 바로 미국의 사법권이 미치는 모든 영토 내에서 주류의 제조, 판매, 운송, 수입, 수출을 금지한 것인데요.
말 그대로 술에 관한 모든 경제 활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입니다. 미국은 왜 이러한 법을 제정했으며, 그토록 긴 기간 시행해 온 걸까요? 당시 미국을 여행했던 프레데릭 마얏이라는 여행가가 쓴 <미국에서의 일기(A diary in america)>중 한 부분을 발췌해 보면 그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글만 보면 정말 미국인들이 저 정도로 술을 마셨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시죠? 당시 미국인들의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1인당 7갤런(gallon)입니다. 이 양을 소주로 환산해 보면 약 440병인데 한 사람당 소주 한 병 이상을 매일 마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소주의 종주국인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나라는 1인당 소주를 연간 90병 소비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술을 좋아하기로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는 나라인데, 금주법 당시 미국은 우리나라 소주 소비량의 5배였으니, 말 다 했죠.
아메리칸 위스키의 포스팅에서 미국으로 이주 온 사람들이 위스키를 마시고 사람들이 취해있는 모습을 보고는, 미국을 ‘미친 자들의 섬’이라는 뜻으로 마나하크타니엔트(Manahachtanienk)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명칭은 현재 뉴욕에 있는 도시 맨해튼(Manhattan)의 유래가 됐죠.
또,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하고자 많은 노예를 부렸고, 이 사탕수수로 럼(rum)이라는 술을 대량 생산했었던 미국인데요. 1863년 노예 해방이 이루어지고,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하기 힘들어지자, 옥수수를 이용해 만드는 미국 대표 위스키인 버번(bourbon)이 인기를 끌기 시작합니다. 미국은 이 정도로 술에 있어선 진심인 나라였던 겁니다.
2. 사회적 문제
1) 여성에 대한 범죄
알코올 소비량이 어마어마하니,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었겠죠? 대개 술을 과하게 마신다고 하면 아마도 범죄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미국은 여성의 참정권도 없을 정도로 여성 인권이 낮은 나라였고, 술을 즐길 수 있는 것도 당연히 백인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미국 남성들은 하루에 소주 2병 이상씩 마시고 다녔다는 소리인데… 당시 사회 모습은 어땠을지 짐작이 가시나요? 가정폭력과 성범죄가 심각했었다고 합니다.
2) 노동력의 기능 상실
사회적으로도 기강이 해이해졌습니다.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ford)의 창설자인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말하길, 당시에는 직원들이 술을 먹고 결근하는 일도 너무 잦았다고 하는데요. 황당하게도 금주법 이후에는 결근율이 40% 이상 감소했다고 합니다. 당시 자동차 산업을 이끌었던 대기업에서도 이런 문제를 겪었다는 것은, 술 때문에 미국의 노동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시사하지요.
3) 보수주의자들의 외국인 혐오
제1차 세계대전으로 혼란스러웠던 1915년에는 영국 호화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독일 잠수함에 격침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여객선 안에는 승객과 선원을 포함해 1957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 사고로 1198명이 사망했고, 이 중 126명은 중립국에 속했던 미국인들이었죠. 독일에 대한 혐오가 강해지고 있던 이 시기에 미국은, 독일인들의 주 수입원이 맥주 양조라는 것을 생각해 냅니다. 그와 동시에 술에 대한 혐오도 생겨나게 되는 것이죠.
4) 종교계에서의 지지
더불어 술을 반감하는 분위기를 개신교(특히 감리교) 쪽에서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동조하면서 그 파장은 더 커지게 됩니다.
금주법의 영향
1. 미국 내 주류사업의 몰락
이러한 문제들은 곧 술을 죄악시하는 금주법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술 애호가들은 애석해했겠지만, 금주법 맹신자들은 이 시기에 많은 증류소들을 문 닫게 하는데요. 버번 전체 생산량 중 80%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켄터키주에서 단 6곳만이 금주법 이전부터 지금까지 운영 중이며, 이 중 올드 포레스터(old forester)만이 유일하게 이름과 사업주 변경 없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재 버번 판매량 1위인 짐빔(jim beam)은 원래 올드 텁(old tub)이라는 증류소를 운영했었는데요. 이 증류소는 금주법 시대에 금주법 맹신자들로부터 파괴되죠. 빔 가문의 손자인 제임스 빔(james beam)은 70살이 되어서야 겨우 자신의 이름을 내건 짐빔 증류소를 재오픈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와인의 경우에는 그 명맥이 끊기다시피하는 큰 타격을 입었었고, 근래에 들어 미국 나파밸리를 기점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2. 미국경제 대공황의 시발점
이 법은 단순히 술만 파매하지 못하게 하여 악법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경제 대공황의 시발점이 되었을만큼 경제적 큰 타격을 무려 13년동안 입혔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의미입니다.
당시 이 법으로 인해 타격을 받은 것이 주류업계 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술을 만드는 증류소는 물론, 증류소에 물건을 납품하는 농가들이 엄청난 타격을 입으며 농업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당시 버번 1병 가격이 25센트로, 우유 1병보다 저렴했다는 것이 버번 생산량을 뒷받침해 주는 주요 지표입니다. 이처럼 미국의 엄청난 알코올의 소비량을 감당하던 농장들이 하루아침에 판로가 막히게 되니,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또한, 이렇게 미국인들이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많은 곳에 술이 퍼질 수 있도록 운송업이 필수적이었는데요. 이 산업 또한 당연히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주류를 취급하는 요식업 및 호텔산업이 큰 타격을 맞게 됩니다.
이 밖에 술병을 제조하던 유리병 제조업체를 비롯한 관련 제조업들, 주류에 대한 광고업체 등 주류와 관련한 모든 산업들이 몰락하게 되면서 미국의 경제 대공황의 시발점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많이 판매되던 술이 금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주류세가 걷히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하고, 관련한 많은 산업들이 타격을 입었다는 것은 그만큼 일자리가 감소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3. 위스키 종주국의 몰락
당시 위스키의 종주국은 아일랜드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금주법으로 인하여 아이리쉬 위스키의 판매가 막히기 시작하며 위스키 종주국이었던 아일랜드가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전세계 60%의 위스키 판매량을 담당하는 아일랜드는 증류소 6곳만 남고 문을 닫게 될 정도로 괴멸적 타격을 입습니다.
금주법이 낳은 것들
그렇다면 과연 잃기만 한 시기였을까요?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도 있지요. 이 시기에 큰 전환을 맞는 것들도 많았는데요. 그 대표적인 것들을 단 2명의 인물로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1. 페미니즘의 탄생: 캐리네이션
먼저 다음의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시죠.
캐리를 제외한 모든 국가의 고객을 환영한다는 말인데…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이는 곧 캐리 네이션(carrie nation)이라는 사람을 거부한다는 언어 유희적인 환영 문구입니다. 캐리 네이션은 한 손에는 도끼,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술을 파는 모든 곳을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하던 여전사였습니다. 술을 판매하는 악의 소굴을 도끼로 때려 부숨으로써 신의 이름으로 정화할 수 있다고 믿던 사람이었죠. 그녀는 왜 이렇게 됐을까요? 그녀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자신의 첫 남편이 알코올 중독과 도박으로 사망했으며, 술 때문에 수많은 여성의 인권까지 유린당하는 것을 보면서 술을 혐오하기 시작했다는 건데요. 이후 신께서 자기 자신에게 세상을 정화하라는 책임을 주셨다고 하네요.
그녀의 이런 행보는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요? 놀랍게도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feminism)의 시초가 됩니다. 그녀가 해 온 다양한 연설과 활동들은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됐고, 결국 여성의 참정권까지 보장해 주는 법을 만들게 했습니다. 금주법을 지지했던 활동이 미국에서 여성의 인권을 높여 준 계기가 된 것이지요.
2. 마피아와의 전쟁의 효과: 알 카포네
알 카포네(Al Capone)
중절모, 롱 코트, 시가, 머신 건… 마피아의 상징적 이미지가 금주법 시대에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것을 알고 계실까요? 바로 밤의 황제라 불리는 마피아 보스, 알 카포네가 만들어낸 이미지입니다.
금주법 시기, 강한 규제로 밀주가 성행하는데요. 미국식 영어 속어로 몰래 달빛을 받으며 제조한 술이라고 해서 문 샤인(moonshine)이라고도 불렀죠. 밀주와 마피아는 누가 봐도 연관이 있어 보이지 않나요?^^ 밀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문 샤인을 유통할 경로가 필요했을 텐데요. 네, 바로 마피아가 이를 담당합니다. 따라서 밀주의 제작, 유통을 통해 마피아는 많은 부를 축적하죠. 당시 마피아 갱단의 경제 규모가 현대 가치로 환산했을 때 애플社의 10배 이상이었다고 하니 정말 엄청난 규모입니다.
26세에 마피아 갱단 보스가 된 알 카포네는 잔혹한 성정으로 유명했는데요. 자신의 밀주를 받지 않는 식당이 있다면 대낮에도 폭탄 테러를 하거나 총기를 난사해 그 식당을 초토화했다고 합니다. 밸런타인데이에 대낮에 상대 조직을 전멸시킨 유명한 사건을 피의 밸런타인데이라고 부른다죠.
이렇게 활개를 치고 다녔음에도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던 이유는, 많은 부를 축적해 정치계에 로비했기 때문인데요. 알 카포네의 한 해 수입은 당시 돈 1억 달러로 기네스북에까지 등재됐었다고요. 이런 타이틀 때문인지 시카고의 많은 청년들은 알 카포네를 아인슈타인과 헨리 포드처럼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로 뽑았을 정도라고 하네요.
긍정적 효과1: 화학공학의 발전
마피아의 주 수입원인 밀주는 유통만이 아닌 위스키 제조에도 많은 발전을 이루게 했습니다. 마피아들이 공업용 알코올이나 다른 화학약품들을 넣고 가짜 위스키를 만들어 유통하면서 1만여 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기도 했죠. 이에 정부에서는 가짜 위스키를 구별하고자 화공학적 연구를 진행했다고 하고, 마피아는 또 이런 정부를 속이고자 화공학자들을 고용해 연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화공학도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요즘 핫한 AI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생성적 대립 신경망(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이라는 알고리즘을 떠올리실 것 같은데요. 속이는 자와 속지 않으려는 자, 서로 발전한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긍정적 효과2: 나스카의 시초
또한 마피아는 정부의 추격을 피하려고 자동차를 개조해 사용했는데요. 스톡 카(stock car)라고 불린 이 자동차는 겉으로 보기에 일반 차와 같았지만, 고성능 엔진을 설치했으며, 조수석과 뒷자리를 비워 밀주를 많이 실을 수 있게 했고, 버튼을 누르면 연막이나 기름을 뿌리는 등 회피 장치까지 달렸었다고 합니다.
마피아는 이런 자동차로 도심에서 드리프트까지 할 수 있는 유능한 드라이버를 고용해 경찰을 따돌리도록 했습니다. 이 추격전은 현재 미국 최대의 레이싱 경기 중 하나인 개조차 경주대회 나스카(nascar)의 모태가 됐다고 합니다.
긍정적 효과3: 냉장차
또한 알 카포네는 위스키를 밀주하던 유통경로를 토대로 우유의 유통과정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요즘 많이 보이는 냉장차가 바로 알 카포네가 우유를 신선하게 배달하고자 당시에 고안해 낸 장치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냉장차 안에 위스키가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긍정적 효과4: 스피크이지(Speakeasy) 바
아마도 다음의 장면을 미국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신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속 장면처럼 문을 똑똑 두드리면, 눈만 가져다 대고 누구인지 확인하고 문을 열어줄 수 있던 비밀 주점을 스피크이지 바라고 불렀습니다. 당연히 금주법 시대에 술을 팔 수도, 살 수도 없으니 몰래 술을 취급하는 장소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겠죠? 사실 이 바는 명목상 술을 파는 곳이 아니라 동물이나 서커스, 공연 등을 구경하는 공연장으로 등록되어 있었고, 음식은 서비스로 나오는 곳이었다고 하는데요. 그 서비스가 술이라는 것은 암묵적으로 아는 사실이었고요^^. 이 스피크이지 바의 존재로 많은 것들이 바뀝니다.
- 현재 미국의 다양한 인종과 관련된 문화
금주법 이전에는 여자와 남자, 흑인과 백인이갈 수 있는 바가 모두 달랐다면, 스피크이지 바는 수익을 최대화하고자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받았기에 이때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섞이는 문화가 자연스레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 현대의 클럽문화
술과 함께 음악이 나왔고, 함께 춤을 추며 놀 수 있는 스피크이지바가 현대 클럽문화의 시초라고 합니다. - 재즈(Jazz)의 대중화
이 바 안에서 자주 연주되던 것이 흑인들의 노래였던 재즈였습니다. 이 음악은 백인들에게 알려지며 점차 대중화됩니다. ‘What a wonderful world’라는 노래로 유명한 루이 암스트롱도 이때 인기를 얻어 재즈의 아이콘이 됐다고 하네요.
정말 술을 마시기 어려웠나?
술을 숨어서 마셔야 한다니… 상상하기 어려운데요. 당시 정말 불법적인 방법 외에는 술을 마실 수 없던 걸까요?
1. 병원
서민들은 술을 마시고 싶어서 의사들을 찾아갔습니다. 술은 항정신성 의약품으로, 의사의 처방이 있다면 술을 마실 수 있었으니까요. 이런 방법으로 위스키 반병 정도를 10만 원대로 구매할 수 있었다고 해요. 따라서 금주법이 시행되고 약 6개월 만에 약용 위스키를 조제하고 판매할 수 있는 의사와 약사가 약 7만 명 늘었다고요. 앞서 말한 위스키 증류소 6곳이 금주법 시대에도 영업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2. 종교계
금주법으로도 종교활동은 제한할 수 없었기에 포도주의 경우에는 교회나 성당에서 사용하는 성찬주로 마실 수 있었다는데요. 1922년 약 200만 갤런이던 성찬식용 포도주가 1924년에는 약 300만 갤런으로 50% 늘기도 했습니다.
3. 재력가들
부자들은 금주법에 있어 제약받지 않았습니다. 금주법에 명시되어 있는 미국령이라는 조건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됐거든요. 크루즈를 타고 미국령 밖으로 나가 바다 위에서 선상 파티를 벌이거나 해외로 술을 마시러 가면 되니까 돈이 많은 부자들에게 금주법은 큰 영향이 없었겠죠? 영화 <위대한 개츠비> 속 유명한 장면이 바로 이러한 부자들의 선상 파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추가: 금주법으로 탄생한 재밌는 발명품
서민들은 밀주 외에도 포도 블록과 몰트 잼을 이용해 술을 마셨습니다. 금주법 시대에는 미국 와인의 대가 끊겼다고 할 정도로 와인 산업계도 엄청난 타격을 입었었는데요. 포도 농장들도 예외는 아니었겠죠? 이 포도 농장주들은 포도를 건조하고 압축해 포도 블록을 내놓았습니다. 블록을 넣고 물을 타면 포도 주스가 된다고 나와 있는데요. 효모를 넣으면 발효가 되니 절대 하지 말라고 적혀 있었지만, 사람들은 주의 사항을 무시했다고 합니다.
맥주회사에서 만든 몰트 잼은 더욱 심했는데요. 버드와이저(budweiser)와 같은 대형 회사에서 몰트 잼을 선보이며 빵에 발라먹으면 맛있다고 광고했지만, 그 누구도 몰트 잼을 빵에 바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모두 잼을 물에 넣어서 그 물이 상하기만을 기다렸다고 하네요!^^
정리
경제 대공황과 마피아의 성행 등 많은 부작용을 불러일으킨 금주법은 결국 그 효력을 잃기 시작합니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금주법 폐지를 자기의 제1공약으로 내세웠고, 당선되자마자 공약을 실천함으로써 13년간 유지돼 온 금주법이 폐지됩니다.
또한 경제를 다시 부흥시키고자, 그가 추진한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몰락한 위스키 오크통 업체들에 힘을 실어주는 버번 규칙을 제정하는데요. 바로 버번을 만들 때 오크통을 재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위스키를 만들 때 사용한 오크통은 뉴딜정책의 목재로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요. 오크통을 새로 만들수록 일자리가 늘고 경제도 좋아지니 일거양득이었겠네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합니다.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대비한다는 말이죠. 긴 시간, 술의 암흑기를 만들고 결국 경제 대공황까지 이르게 했던 미국의 금주법이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했던 많은 주류 종사자, 그리고 관련한 인물들을 떠올려 보면서 우리 또한 인생에서 맞는 갑작스러운 위기에 어떤 자세로 대처해야 할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