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크에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위스키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캐스크로는 셰리와인을 담았던 셰리 캐스크와 버번위스키를 담았던 버번 캐스크가 있습니다. 이 두 캐스크는 위스키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위스키 최강국인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를 숙성하는데 주로 사용하는 캐스크임에도 스코틀랜드에서는 생산하지 않는다는 특이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각각의 캐스크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셰리 캐스크(Sherry Cask)
셰리 와인
셰리 캐스크는 셰리라는 주정강화 와인을 담아 둔 오크통을 의미합니다. 주정강화 와인은 기존 와인에 스피릿을 섞어 알코올 도수를 높여 보존성을 높인 와인입니다. 과거에는 타국에 많은 양을 운송하는 유일한 수단이 배였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와인이 운송돼야 했습니다. 와인이 온도와 습도에 굉장히 민감한 술이기에 이 기간 동안 와인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알코올에 스피릿을 첨가했다는 것이 주정강화 와인의 탄생이라고 합니다. 이 중 3대 주정강화 와인은 포르루갈의 포트(Porte), 마데이라(Madeira), 스페인의 셰리(Sherry)입니다.
솔레라(Solera) 시스템
셰리 캐스크는 셰리 와인을 숙성한 오크통이 아닌, 운송한 오크통을 사용합니다. 일반적인 와인숙성방식과는 다른 셰리와인만의 독특한 숙성방식인 솔레라 시스템 때문입니다.
- 구성요소
피라미드처럼 오크통을 쌓아놓습니다. 맨 아래층의 오크통은 솔레라라고 하며, 그 위부터는 크리아데라(Criadera)라고 함 - 시스템의 순서
- 솔레라에 위치한 셰리와인을 일정량 병입
- 솔레라의 빈 공간만큼을 그 윗층의 셰리와인으로 채우고, 이 과정을 맨 꼭대기층까지 반복
- 가장 윗층에 빈 공간에는 새로운 셰리와인을 채움
단, 이 때 채워지는 셰리와인은 오크통의 1/3을 넘기면 안됨
- 특징
다양한 숙성기간의 와인이 계속해서 혼합이 되기 때문에,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다양한 빈티지 와인의 풍미를 얻는데 유리
이 시스템 덕분에 셰리와인은 쉽게 풍미를 따라할 수 없는 와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이어져오는 혼합과정이 들어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빵집에서 발효시킨 반죽의 일정량을 계속 남겨두어 거기에 반죽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효모를 오랜시간 살리는 것이나 일본의 장어 소스는 사용한 만큼의 재료들을 추가해 한 솥에서 계속 끓여 만드는 것처럼 말이죠.
이처럼 캐스크를 변경하면서 사용하는 숙성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셰리 캐스크는 숙성용 캐스크가 아닌 운송용 캐스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셰리 캐스크의 역사
솔레라 시스템으로 인해 와인을 숙성하던 오크통채로 운송할 수 없는 셰리와인은 운송용 오크통으로 셰리와인을 옮겨담아 운송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이 운송용 오크통을 사와서 이를 위스키 숙성에 사용한 것이 셰리 캐스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1986년, 와인을 병에 담아야만 수출해야 한다는 스페인 법이 제정되면서 운송용 오크통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이로 인해 셰리캐스크의 수급이 어려워졌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즈닝(Seasoning) 캐스크를 개발합니다. 이는 우리가 고기에 양념을 바르는 시즈닝과 같은 개념으로, 셰리와인의 풍미를 캐스크에 살짝 입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즈닝은 6개월~30개월의 기간동안 셰리와인을 담아두고, 압력을 가하여 쓴맛들을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셰리 캐스크 숙성 위스키 특징
그렇다면 이런 셰리 캐스크에 숙성한 위스키는 어떤 풍미를 가질까요? 셰리 캐스크에 숙성한 위스키는 풍부한 과일향이 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건조 과일의 풍미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중에서도 건자두나 건포도와 같은 향이 많이 나는 편입니다. 또한 스파이시한 향신료의 향도 느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향을 좋아하는 분들은 ‘꾸덕꾸덕하고 진한 과일의 풍미’와 같이 표현하기도 하고, 싫어하는 분들은 ‘꼬릿꼬릿한 냄새’ 등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과일향으로 느끼든 발냄새로 느끼든 좋은 풍미로 인식하고 찾는 분들이 많은 인기 위스키들입니다.
버번 캐스크(Bourbon Cask)
수량의 원인
버번 캐스크는 버번위스키를 숙성했던 오크통을 의미합니다. 이 오크통이 위스키를 숙성하는 주 캐스크 중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버번의 생산규정때문입니다. 바로 새 오크통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규정이 생긴 이유에 대해 2가지 유력한 설이 있습니다.
- 미국의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New Deal)정책의 일환으로, 참나무의 소비와 오크통 제작업체의 매출을 늘려주기 위해
- 오크통 제작업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부에 로비를 했기 때문에
토스팅(Toasting)과 챠링(Charring)
버번 캐스크의 풍미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제작과정 중 들어가는 토스팅과 챠링입니다.
토스팅
토스팅은 캐스크의 내부를 비교적 낮은 온도로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가열하는 과정입니다. 토스팅은 오크목 속 당분을 열에 의해 캐러멜화시켜, 버번에 부드럽고 복합적인 풍미를 제공합니다.
- 목적: 바닐라, 캐러멜, 견과류와 같은 달콤하고 풍부한 풍미를 강화
- 시간 및 온도: 일반적으로 낮은 온도(150~230°C)에서 10~60분 가량
- 효과: 오크 속에 있는 리그닌, 헤미셀룰로오스 등이 분해되어 바닐린, 프루라놀 등 향미 성분이 생성됩니다. 이로 인해 숙성된 버번에서 달콤하고 복합적인 풍미가 나타납니다.
챠링
챠링은 토스팅보다 높은 온도로 짧은 시간 동안 오크통 내부를 태우는 과정입니다. 이 공정에서는 불꽃이 오크통 내부를 직접 그을리면서 숯층을 만드는데, 이 숯층이 활성 필터 역할을 하여 숙성 중인 알코올의 불순물을 제거해주고 특유의 스모키한 맛을 제공합니다.
- 목적: 버번의 특유의 스모키함과 깊은 호박색을 형성하고, 불순물 제거 및 활성 필터 역할
- 시간 및 온도: 고온(약 250~320°C)에서 15~60초 정도 짧게 처리
- 효과: 숯층이 형성되어 숙성 중 불순물 제거 효과를 발휘하고, 버번에 진한 호박색과 스모키한 풍미를 더합니다. 또한, 이 숯층을 통해 필터링된 버번은 더욱 부드러워집니다.
- 단계:
- 태우는 정도에 따라 1~4단계로 분류
- 가장 많이 태운 4단계는 표면이 악어껍질처럼 된다하여 Alligator Char라고도 함
- 단계가 높을수록 위스키의 색이 황금색에서 진한 호박색으로 변하고, 바닐라/캐러멜/스모키의 풍미가 강화됨
- 일반적으로 3단계를 많이 사용
버번 캐스크 숙성 위스키의 특징
버번 캐스크는 버번의 향미를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바닐라의 향이 강하고, 후추와 같은 향신료에서 느껴지는 매콤한 타격감, 배와 같은 달콤하고 시원한 향, 캐러멜과 같은 단 향과 맛이 특징인데요. 하지만 보통 버번 캐스크는 제품명에 잘 표시가 되지 않고 제품 설명에만 표기가 되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표기도 버번 캐스크라는 이름보다는 미국 오크통(American Oak Barrel)로 되어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버번 베럴을 아메리칸 스탠다드 배럴(American Standard Barrel, ASB)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미국 위스키가 재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특징이 같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정리
위스키 숙성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캐스크이지만, 타국에서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재미난 배경을 갖고 있는 두 캐스크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각각 셰리와인과 버번 위스키의 풍미를 갖고 있는 두 캐스크를 비교해보면서 그 차이에 대해 느껴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