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위스키 시장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국가입니다. 스카치 위스키 소비량에 있어서 세계 1위에 달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의구심을 가지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세계 5대 위스키 생산국도 아니잖아.”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국가도 아닌데 비싼 술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마셔?”
“인도의 주 종교인 힌두교와 무슬림은 술을 못먹는거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1위의 스카치 위스키 소비국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더구나 단순히 소비만 잘 하는 나라는 아닌데요, 이 인도의 위스키에 대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인도 위스키 시장의 위상
인도는 스카치 위스키 수입국 랭킹 1위를 달리는 국가입니다. 힌두교와 무슬림이 주 종교라 술을 금기시하는 국가가 세계 위스키 수입국 1위라니… 14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가 품은 술에 대한 갈망을 종교의 교리로 막기엔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인도가 세계 위스키 소비량 1위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 10년간 자국민의 위스키 소비량이 200% 이상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지표는 인도 위스키 시장의 큰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인도의 수입 위스키 관세는 무려 150%나 되는데도 전 세계에서 위스키를 가장 많이 수입하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죠. 참고로 우나라의 수입 위스키 관세가 20%인데도 우리는 ‘양주가 비싸다.’라고 생각하고 있죠.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인도는 위스키를 왜 이렇게 많이 수입하고 있는 걸까요?
인도 위스키 시장의 증가 원인1: 인식의 변화
최근 우리나라에서 위스키 인식은 기성세대의 술에서 젊은 세대의 술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었는데요. 인도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와 같은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어요.
인도는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종교의 주를 이루는 국가이고, 이 두 종교는 술에 매우 엄격합니다. 그렇기에 대중 매체에서 위스키는 알코올 중독자나 마시는 술로 표현되곤 했었습니다. 더군다나 위스키를 사치품으로 여기기도 했고요. 그러다 자국에서 싱글몰트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인도의 할리우드라고 불리는 발리우드의 많은 영화 속에서 위스키를 세련된 술로 묘사하기 시작합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클럽이나 바 등에서 위스키와 함께 휴식을 즐기는 주인공들의 모습도 많이 방영되곤 했습니다. 결국 매체에서의 잦은 노출 덕에 도시의 젊은 층에 통했고, 그게 자국 내 위스키 소비량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죠.
인도 위스키 시장의 증가 원인2: 중산층의 증가
특히 200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위스키 판매량은 20배 이상 증가했으며 2020년부터는 매년 2배에 가까운 판매량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인도의 경제 성장으로 중산층이 늘어 위스키를 구입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도 위스키
인도는 단순히 소비만을 잘하는 나라가 아니고, 위스키의 생산도 세계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국가입니다. 인도 위스키가 생소하실 수 있는 분들을 위해 인도 위스키의 위상을 보여줄 수 있는 세계 증류주 판매 순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단순히 우리나라의 진로가 1위인 것에 놀라셨을 수 있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10위권 내에 있는 4개 증류주가 인디안 위스키라고 쓰여 있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차트를 만약 증류주가 아닌 위스키 순위로 바꿔 본다면 어떨까요?
1위부터 4위까지가 모두 인디안 위스키입니다. 미국 위스키 판매량 1위인 잭다니엘, 스카치위스키 판매량 1위인 조니워커, 아일랜드 위스키 판매량 1위인 제임슨, 캐나다 위스키 판매량 1위인 크라운 로열을 모두 이긴 술이 아마 여러분들은 이름도 들어본 적 없을 인도 위스키입니다. 심지어 6위인 블랜더스 프라이드, 8위인 8PM도 인도 위스키예요. 판매량 10위권 위스키 중 무려 6개가 인도 위스키인 건데요. 이 정도로 판매량이 많은데, 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위스키를 조니워커로 알고 있고, 인도 위스키는 잘 모르는 것일까요?
인도 위스키는 위스키인가?
인도에서 정하는 위스키의 정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위스키와 다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그래프에 있는 모든 위스키는 블렌디드 위스키인데요. 일반적인 블렌디드 위스키는 보리만을 사용한 몰트위스키와 곡물을 사용하는 그레인 위스키를 합쳐서 만드는 위스키입니다. 그러나 인도 위스키는 진짜 위스키 원액에 주정을 섞어 만드는 가짜 위스키에 속하죠.
쉽게 생각해서 인도는 우리가 소독할 때 쓰는 에탄올을 넣어 술을 생산합니다. 인도에서 주정은 설탕의 주재료인 사탕수수를 이용해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인도 입장에서는 위스키에 들어간 재료가 결국 전분과 같은 곡식의 개념이라 여겨 자국 위스키를 그레인 위스키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인도의 주장이고, 진짜 위스키를 가리키는 통계에서는 제외될 수밖에 없기에 우리에게 인도 위스키가 생소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인도는 왜 이런 위스키를 만드는 걸까요?
바로 관세와 관련이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1982년에 최초로 위스키 증류소를 세웁니다. 즉, 그 이전까지는 국내에서 위스키 원액을 생산하지 않았단 소리이죠. 위스키를 만들려면 위스키 원액을 수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수입 시 150%의 관세가 붙기에 위스키 가격을 낮추려면 값싼 주정을 섞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러한 부분은 우리나라 위스키의 역사와 인도에서 위스키 세금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최근, 중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가 또 하나 있습니다.
최초의 유색인 영국 총리인 리시 수낵은 인도계 출신 인물로, 인도의 국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가 영국 총리로 당선된 후에는 인도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추진됐는데요. 당시 그가 제안한 것이 바로 영국의 위스키 수출에 대한 관세 완화였고, 많은 인도인이 영국 총리의 제안을 환영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만약 관세가 더 낮아진다면 인도의 위스키 시장은 얼마나 더 폭발적으로 발전할지 궁금해집니다.
인도 위스키 특징
사실 인도는 19세기에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 일찍부터 위스키를 제대로 경험한 나라지만, 정작 싱글 몰트를 생산할 수 있는 위스키 증류소는 1982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만들어진 셈인데요. 어찌 보면 위스키를 처음 접한 시기에 비해 위스키 역사가 짧은 편입니다.
20%의 엔젤스 쉐어
이런 인도 위스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엔젤스 셰어(angels share)입니다. 아무래도 더운 지역에서 생산되다 보니, 위스키를 숙성하며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원액의 증발을 의미하는 엔젤스 셰어 (angels share) 현상이 크게 나타나는데요. 스코틀랜드 위스키가 약 2%대의 엔젤스 셰어를 나타낸다면, 인도는 무려 12~20%라고 합니다.
이는 당연히 위스키 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일 수 있으나, 인도에서는 짧은 숙성 기간에도 숙성 효과가 좋다는 점을 활용해 위스키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인도의 1년은 스카치의 4년과 같은 효과를 보인다고 하는데요. 물론 숙성하는 시간이 짧기에 단순히 사업성은 좋아 보일 수 있으나, 이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꽃길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꽃을 하나씩 따 꽃다발을 만드는 것과 스포츠카를 타고 달려가면서 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6줄 보리
일반적으로 위스키를 제조하는 데 사용하는 보리는 2줄 보리이지만, 인도 위스키는 히말라야에서 재배하는 인도산 6줄 보리를 사용합니다. 6줄 보리는 우리가 흔히 먹는 보리로, 2줄 보리에 비해 전분 함량이 낮고 단백질과 같은 다른 영양소가 높은 보리입니다.
전분 함량이 낮다는 것은 알코올로 변하는 양이 낮다는 뜻으로, 수율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단백질과 같은 다른 영양소가 높다는 것은 맛을 낼 수 있는 성분들이 더 풍부하지만, 그만큼 좋지 않은 맛을 낼 수 있는 가능성도 높으므로 술을 만들기에는 까다로운 조건임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자국에서 생산하는 보리를 활용해 자국만의 고유한 특징을 살리는 위스키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위스키 증류소들이 국산 곡물을 사용해 보려 노력하는 것과 같은 일종의 자부심과 열정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국외에서 론칭하는 위스키
어떻게 보면 가장 특이하게 보이는 인도 위스키의 또 다른 특징은 위스키 론칭을 영국에서 한다는 점인데요. 이는 앞서 설명해 드렸듯이 인도에서 위스키라는 개념이 혼재된 까닭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위스키의 기준과는 다른, 인도만의 기준으로 자국에서 위스키를 론칭하면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겠죠? 이를 대비하고자 위스키로 가장 인정받는 나라인 영국에서 론칭함으로써 자신들의 위스키 기준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임을 보증하는 나름의 꼼수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자국 위스키를 자국에서 출시하지 못하다니… 참 웃픈 현실입니다.
인도 위스키의 위상
위스키를 인정받기 위해 영국에서 론칭까지 하는 인도의 ‘진짜’ 위스키는 어느 정도의 수준일까요? 인도의 진짜 위스키는 짧은 역사와 가짜 위스키를 만든다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높은 평을 받고 있는데요. 인도의 위스키는 암룻(Amrut)과 폴 존(Paul John)이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고 있고, 최근에는 엄청난 성장률을 보이며 쫓아오고 있는 인드리(Indri)가 있어 치열한 삼파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최근 람푸르(Rampur)라는 위스키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요.
이중 막내 격인 인드리만 하더라도 2021년 11월에 첫선을 보였음에도 World Whisky Awards와 같은 권위 있는 대회에서 올해의 아시아 위스키, 세계 최고 위스키 등으로 선정되면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인드리 위스키의 경우 놀랍게도 작년 대비 600%에 가까운 비약적인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데요. 특히 인드리 트리니(Indri-Trini)라는 라인은 출시 2년 만에 10만 케이스를 판매하는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전 세계 최초 기록이라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맛이 궁금하실 인도의 대표적인 위스키 4종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볼까요?
정리
국내외의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엄청난 위스키 소비시장과 세계적으로 위스키의 품질을 인정받고 있는 인도의 위스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비록 역사는 짧고, 그만큼 숙성기간도 짧을 수 밖에 없는 위스키이지만, 자신들의 기후조건의 악조건을 하나의 특징으로 변화시켜가며 성장해 나아가는 인도 위스키도 충분히 경험해볼만한 위스키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