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예로부터 노력해왔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많은 장벽으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가 현재는 몇몇 증류소의 노력으로 새로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 중 가장 큰 장벽은 우리나라의 주세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세법
주세
주세는 술(주류)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국가가 주류의 생산, 유통, 소비 과정에서 과세하는 조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세법을 통해 주세가 부과되며, 이는 국가 재정 수입 확보, 주류 소비 관리, 주류 산업 발전과 형평성 유지 등의 목적으로 시행되는 세금입니다.
여기에서 술로 여겨지는 것은 알코올 도수 1% 이상인 모든 음료를 의미합니다. 즉, 0.9%의 알코올을 함유하고 있는 음료라고 한다면, 주세 대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종량세
종량세는 주류의 용량(리터)이나 도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맥주, 막걸리(탁주), 기타 발효주에 적용됩니다. 우리나라는 용량에 따라 세금을 부여합니다. 세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 맥주: 리터당 885.7원
- 탁주(막걸리): 리터당 44.4원
- 주정: 1킬로리터당 57,000원
이 중, 맥주와 탁주의 경우에는 2020년 1월 1일부로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된 주류입니다. 그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술로서 마시는 음료는 모두 종가세였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 술이 종량세러 전환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국내 맥주 산업 활성화:
- 과거 국내 맥주의 주세: 판매가격(생산비용+마진)을 기준으로 세금
- 과거 수입 맥주의 주세: (수입품목이기 때문에)신고가를 기준으로 세금.
- 수입맥주의 주세에는 마진이 포함도어 있지 않은 신고가에만 세금이 책정되고, 심지어 신고가가 국내 맥주의 생산비용보다도 낮았음.
- 가격 경쟁면에서 국내 맥주가 상당히 불리하게 됨.
- 종량세로 변경하면서 국내 맥주와 수입 맥주의 세금을 동일선상에 둠
- 국내 산업을 지원하고,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효과 발생
- 전통주 보호와 지원:
- 막걸리와 같은 탁주의 경우, 생산되는 곡식을 사용하여 만듦
- 당시 곡물 가격에 따라 생산비용이 큰 차이를 보임.
- 예를 들어, 흉작이라 쌀이 생산되지 않아 쌀의 가격이 높으면 생산비용이 높아져 주세가 올라가게 되므로 막걸리 가격이 올라갈 수 밖에 없음
- 저렴하지 않은 막걸리는 소비자에게 어필이 되지 않음
- 생산량도 적어지는데, 판매량도 적어지는 악순환이 생김
- 종량세로 변경하면서 세율을 낮춰, 일정하게 낮은 가격으로 판매가 가능해짐.
- 소비자 선택의 폭 확대: 종량세로 바뀌면서, 세금 감소로 인한 생산비용에 대한 부담이 적어져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소비자들이 보다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
현재 OECD 국가 중 대부분의 나라들은 종량제를 채택했지만 단 네 곳만이 종가세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그중 하나입니다.
종가세
종가세는 판매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입니다. 가격이 높아지면 세금도 증가하는 구조로, 소주, 과실주, 리큐르 등에 적용됩니다. 세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약주 및 청주: 출고가의 30%
- 과실주: 출고가의 30%
- 증류주류(소주, 위스키, 브랜디 및 일반 증류주) 및 리큐르: 출고가의 72%
- 기타 주류: 출고가의 30%
종가세는 대부분 경제가 어려운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경제 상황이 어려운 나라는 국민 대다수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저가 술을 마실 확률이 높고, 비싼 술을 구매한 사람들만 세금을 많이 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형평성 면에서 좋다고 볼 수 있고, 물가 상승률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기에 국고 관리 차원에서도 좋습니다.
반대로 경제 상황이 좋은 나라에는 좋지 않습니다. 국민들 대부분이 중고가 술을 찾을 텐데 이는 과한 세금 부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 주세법의 문제점
경제 상황이 좋은 나라들이 종가세가 아닌 종량세를 채택하는 이유는 또 있는데요. 종가세 채택 시 고급 주류산업의 발전을 막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증류주와 같은 고급 주류에 대한 우리나라의 주세법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주세법상 우리나라의 술 중 증류주류는 제조원가의 72%를 주세로 책정합니다. 이 주세의 30%를 교육세로 책정하고, 제조원가, 주세, 교육세를 합친 것에도 부가가치세 10%를 책정합니다. 즉 세금이 무려 제조원가의 112%를 차지하죠. 수입 주류의 경우는 더 심한데요. 해외에서 유통마진까지 포함한 수입 원가의 20%가 관세로 붙는데, 이 금액을 제조원가로 책정하기 때문에 유통마진을 제외하고 단순하게 계산해 보더라도 155%의 세금이 붙습니다.
즉 좋은 원재료, 고급 패키징을 사용할수록 많은 세금을 내게 되니 이런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우리나라에서 고급 주류산업이 발전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일본은 종량세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1리터 용량 40도짜리 위스키 과세표준이 1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위스키는 약 4000원 정도의 주세가 붙지요. 만약 1리터 위스키 제조원가가 100원이어도, 100만 원이어도 세금은 동일하게 4000원이 붙습니다. 그러니까 국내에서 술을 제조할 때는 제조원가가 낮아야지만 일본에서 제조해 가져오는 것과 비교했을 때 경쟁력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죠. 결국 종가세 적용 국가에서 만드는 술은 대체로 제조원가가 낮아 품질이 비교적 떨어지는 술을 만드는 데 유리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주세는 주류 산업의 발전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나라 전통주 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2008년, 정부는 전통주 세금을 50% 감면하는 정책을 시행하는데요. 그 결과 희석식 소주의 판매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고 전통주가 대부분인 증류식 소주의 판매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2020년에는 맥주와 탁주 세금 체계가 70년 만에 종량세로 바뀌는 국면을 맞이하는데요. 이때 다양한 국산 맥주와 막걸리들이 출시했고 판매 시장 또한 커졌습니다. 또한 종량제를 채택하는 나라들과 주류 가격 차이가 크게 나다 보니 최근에는 일본이나 대만처럼 가깝고 교통비도 저렴해 술을 싸게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일부러 여행 가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주세 때문에 적지 않은 외화 유출도 일어나는 상황이네요.
주세법 변경방안
이렇게 현재 우리나라의 주세법에 문제가 많다면, 어떻게 변경해야 할까요?
1. 소주와 다른 증류주의 세율을 다르게 책정한다.
이 방법은 과거에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적이 있는 방법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안되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소주와 같은 국내산 증류주에는 낮은 세율을 부과하고, 외국산 증류주인 위스키, 브랜디 등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세율을 적용했습니다. 소주가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술로 자리 잡은 반면, 위스키나 브랜디는 상대적으로 고급 주류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소비자의 경제적 수준이 달랐다는 점에서 세금의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외국산 증류주에 비해 소주가 가격 경쟁력에서 유리해졌고, 외국산 주류 업체들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1996년, 유럽연합(EU)과 미국은 한국이 소주와 외국산 증류주에 다른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WTO의 공정 무역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며 WTO에 제소했습니다. WTO는 한국의 주세 차별이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제3조의 내국민대우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결했습니다. 내국민대우 원칙은 수입 제품이 국내 제품과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습니다.
1999년, WTO는 한국이 소주와 외국산 증류주 간 세율 차별을 철폐할 것을 권고했고, 한국 정부는 이에 따라 주세법을 개정했습니다.
결국 같은 증류주인 이상, 위스키와 같은 고급 증류주들과 소주는 다른 주세를 책정할 수 없습니다.
2. 모두 종량세로 변경한다.
사실 이 방법이 현재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건 바로 익숙한 초록색 병, 소줏값을 건드릴 수 없다는 이유에서인데요. 희석식 소주는 서민의 술이라고 불릴 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주인데 만약 종량세를 도입한다면 소주에 붙는 세금이 올라갈 것이고 이는 엄청난 반발로 이어지겠지요. 따라서 그 어떤 정부도 그동안 함부로 주세를 개편하지 못했어요.
실제 소주의 원가는 450원, 주세는 508원인데요. 만약 종량세로 개편한다면 맥주를 기준으로 봤을 때, 리터당 세금이 약 900원입니다. 해외 750ml 위스키 경우에는 병당 675원의 세금이 붙습니다. 계산해 보면 현재 기준으로 10만 원에 구매할 수 있는 제조원가 4만 원 상당의 해외 위스키(현재는 세금이 155% 이므로) 구매 시 관세 20%를 포함하더라도 현재보다 절반 이하 가격인 4만 9000원 정도(원가에 관세 20%가 포함되므로)에 구매할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인기 있는 위스키는 물론이고, 와인과 같은 다른 고급 주류들도 마찬가지로 절반 이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되는 건데… 이런 상황이 온다면 당연히 초록색 병 소주 산업이 위기에 처하지 않을까요?
3. 국내 위스키를 지역특산주로 분류
우리나라의 전통주에 대한 주세 면세 제도는 전통주 산업의 보호와 육성을 위해 마련된 정책입니다. 전통주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제조 방법으로 생산되는 술로, 주세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 민속주: 주류 부문의 국가무형유산 보유자 또는 시·도무형유산 보유자가 제조하는 주류
- 지역특산주: 농어업경영체 및 생산자단체가 주류제조장 소재지 관할 또는 인접 자치단체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주원료로 하여 제조하는 주류로서 광역자치단체장의 추천을 받아 제조하는 주류
이러한 전통주에 대해서는 주세법상 세금을 50% 감면해주는 세제 혜택이 부여됩니다. 또한, 전통주는 인터넷 등 통신수단을 통해 실수요자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는 특전도 부여받습니다.
앞서 안도소주와 같은 전통소주들이 세금감면을 받으면서 꾸준하게 생산량과 수요가 늘어나며 시장이 커지고 있는 데이터는 보여드렸었습니다. 이를 보았을 때, 이러한 세제 혜택은 시장규모를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위스키는 민속주는 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지역특산주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지역특산주의 조건 때문입니다.
- 농어업경영체 및 생산자단체가 직접 생산
- 주류제조장 소재지 관할 또는 인접 자치단체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주원료로 하여 제조하는 주류
이 두 가지 조건을 완화해서 지역특산주가 된다면, 위스키 생산에 있어서 좋은 방향이 될 것 같습니다.
- 증류소를 농어업경영체나 생산자단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수정. 혹은 증류소를 이런 단체에 편입시킴.
- 사용되는 곡식에 대한 지역규제를 없애거나 완화
- 위스키나 브랜디 같이 특정 작물이 요구되는 술의 경우, 이러한 작물이 있는 지역에서는 증류소에 대한 혜택을 줌으로서 증류소 유치
이렇게 변경하는 데에도 여러 어려움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제일 현실적인 방안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리
우리나라는 위스키를 포함한 고급주류를 생산하는데 있어서 종가세의 주세를 채택하고 있다는 주세법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위스키를 생산하고 있는 증류소들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하여 국가에 계속적인 건의와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주세법이 개정되어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우리나라의 주류산업이 보다 발전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